아침에 산책을 하다가 자전거가 넘어져 쓰러지신 할아버지를 만났다.
근처 가게 사장님이 일으키는걸 도와달라고 하셔서 도와드리고, 자전거 체인이 빠진걸 보고는 지나가던 중년 부부도 도와주셨다.
119 불러드린다고, 댁 어디시냐고 묻는데 한사코 괜찮으시다고 자전거를 끌고 가시는데 불안해서 뒤에서 좀 지켜보면서 걸어갔다.
근데 자꾸 한쪽으로 기울면서 위태위태 하시더니 기어코 한번 더 넘어지셨다.
이사온지 얼마 안돼서 동네에 뭐가 있나 돌아보다가 방금 파출소 지나온게 기억이 났고, 구급차 부를 정도는 아니었던거 같아서 112에 연락을 했다.
한사코 도움은 안받으신다는데 왠지 경찰분 말은 들으실것 같아서. 근데 도착하신 경찰분이 다음엔 이런건 119에 신고하라고 하시더라..ㅎ
경찰은 범죄에 특화되어있고, 본인이나 저나 의학지식은 똑같다고 덧붙이시면서.
경찰분 하신 말씀 다 맞는 말이고 어떤 의도였는지 다 이해한다만 알겠다고 하고 돌아오는 길이 그냥 좀 창피하고 씁쓸했다.
둘중에 어디 연락해야 하나 고민하긴 했는데 나의 짧고 작은 의학지식으로 구급차는 아니어도 되겠다고 생각한게 실수였나보다.
가던길 못가고 좋은맘으로 도우려한건데 좀 울적하다.
라고 적고도 마음이 좀처럼 풀리지가 않아 오만생각이 다들었다.
다음엔 더 잘해야지, 그래도 남을 도와야 하는 순간에 망설이지는 말아야지.
어찌됐든 할아버지는 댁에 잘 돌아가셨을거야.
좋은 일은 돌고 돌아 나에게 돌아올거야.
하지만 역시나 구급차를 부를정도의 상태는 아니신것 같았고, 엠뷸런스는 조금더 위급한 상황의 사람에게 가는게 맞다고 생각했을 뿐..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도움을 한사코 거절하시는 할아버지의 고집에서 경찰의 안내가 필요하지 않을까 판단했을 뿐.
그렇게 비틀대고 넘어지시면서도 집이 아니라 공원을 향해 가고 계시는 할아버지의 위태로움이 걱정됐을 뿐.
하지만 산전수전을 겪은 경찰이 한 말도 이해는 간다. 각자의 입장과 상황이 있겠지.
하지만 다음에 또 같은 일을 겪어도 구급차를 부를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겪었던 그 상황에선 할아버지에게 민중의 지팡이가 필요했기에.
경찰을 원망하거나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냥 오늘 그 상황에서 잘못한게 나 한명뿐인가 하는 사실이 조금 서글퍼서.
도와드리고 싶었을 뿐인데
아침의 그 일을 시작으로 왠지 이상한 하루였다.
결정적으로 유튜브 프리미엄을 결제하려다 오류가 나서 세시간 이상을 전전긍긍 머리를 싸매고 고군분투해야만 했던 것이 오후의 멘탈을 와르르 무너뜨려놓았다.
우회결제를 하려다 에러가 난 모양이었는데 이만원 남짓의 돈을 날리게 될 처지가 되니 스스로가 하염없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정상적인 결제가 아니었기에 취소되었다는 알림이 오자 그 모든 우울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별일인듯 별일 아닌 일이었지만 나의 반나절, 아니 그 이상을 구렁텅이로 몰아넣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건이었다.
그런 모슴에 스스로도 한숨이 났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해결이 되고난 뒤, 저녁먹은 식탁을 정리하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보안문 울타리를 넘지 말아야겠다고.
몇억짜리 아파트의 보안문 안과 밖은 전혀 다른세상이었다.
울타리 밖 동네를 구경하러 나갔다가 쓰러진 할아버지를 마주치고, 그 할아버지를 돕고도 쓴소리를 들어야 했던 아침.
그 애매한 씁쓸함이 나의 하루를 무기력하고 쳐지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앞으론 굳이 그런 상황을 만날 일을 만들지 말아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어디서든 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진 못할 것이다.
핏속 깊이 흐르고 있는 오지라퍼의 유전자가 날뛸것이므로.
하지만 굳이 그런 일이 도사리고 있는 곳으로 먼저 걸어나갈 생각은 들지 않게 됐달까.
내가 만약 오늘 아침, 한사코 도움을 만류하는 그 할아버지를 따라가 지켜보지 않았다면,
두번째 쓰러진 할아버지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셨겠지.
나와는 다르게, 의학지식이 풍부한 사람을 만나 구급대원의 처치를 받으셨을지도 몰라.
그런생각들 마저 들고 나니 더더욱, 명치께까지 올라온 보안문을 넘어갈 용기가 나질 않는다.
잘 정돈되고 보호받는 울타리 안을 걸으며 나의 하루를 지키는게 지금의 나에게는 더 가치있는일 아닐까 싶다.
주문이 또 뜸해지자, 앞으로 무얼하고 살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반복된다.
캐릭터 모델링을 하고는 있는데, 계속 똑같은 방법으로 만들기만 하니 스스로도 좀 질리는것 같기도 하고.
공부해서 더 다양한 방법으로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하는데,
돈이 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 사이에서 또 약간 서성서성하는 중.
돈이 되지 않는 일을 하고 있자니 뒤에서 대출금이 쫓아오는 것만 같고
돈 되는 일만 하자니 또 물려서 밍기적 거리고 있다.
며칠전 3개월치 대출금을 통장마다 쪼개서 빼놓았다.
나에게 3개월의 시간을 준 것이다.
3개월치의 생활비도 남겨두긴 했다.
어느정도 단물이 빠진듯 한 지금 하는 일은 수요가 소강상태에 접어든 듯 하다.
경쟁자도 늘어 가격 방어가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작품의 스타일을 좋아해서 월급을 모으고 모아 의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매 의뢰마다 최선을 다한다.
내가 받은 돈의 가치를 생각하며, 받은사람이 내 작업물을 받아들었을때, 돈들인 보람이 있네 하는 소리를 꼭 듣고 싶어서.
그럼에도 이제는 어느정도 갈림길에 온 것 같다.
내가 가고싶은 길로 다시금 공부해서, 벽을 깨 부수고 나가야 할때.
하지만 돈 버는 일을 소홀이 할 순 없으니, 적절히 안배를 해야겠다.
한 주에 돈버는일 1개,
공부하는 일 2개,
나누는 일 2개.
일정을 짜서 지켜나가보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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